지금 당장 당신의 SNS 계정을 삭제해야 할 10가지 이유 (재런 러니어)



고양이들은 여전히 각자 삶의 주인으로서 주도적으로 살아간다.

온라인에서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터무니없는 행동을 했다면, dog whistle에 반응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역사상 최고의 부를 획득한 대기업들이 만든 알고리즘의 자극에 쉴 새 없이 노출되고 지속적으로 감시받는 세상에서 어떻게 해야 우리의 자주성을 지킬 수 있을까?

당신은 자유의지를 잃어가고 있다

cage

우리는 쉴 새 없이 추적당하고, 평가받고, 누군가가 의도적으로 제공하는 피드백을 받는다. 그러면서 얼굴 없는 기술자들이 알 수 없는 의도로 거는 최면에 서서히 빠져든다.

한때 광고라고 불렸을지 모르는 것들은 이제 어마어마한 규모로 행해지는 지속적인 행동수정behavior modification(?)이다.

reinforcement theory

보상reward - 진짜 보상(먹이) 대신에 상징을 활용하는 방법은 행동수정에도 꼭 필요한 도구가 됐다. (e.g. 반짝이는 사탕/동전 이미지, 하트, thumb up - 약간의 도파민)

부적 보상negative reward - 소셜미디어를 안 쓰면 기념품을 안 주기

mystery

행동에 주요한 영향을 미치는 건 임의적이고 예측 불가능한 피드백의 작용이다

적응형 알고리즘adaptive algorithm - 더 나은 결과(더 많이 참여해 수익성 향상)를 얻기 위해 끊임없이 (무작위 테스트를 통해) 수정됨

자연에서 (우연히 발생한) 돌연변이가 선택받듯, 무작위 자극이 (새롭고 놀라온 것을 추구하도록 진화한) 뇌의 선택을 받는다 - 중독

천국과 지옥은 타인에게 있다

인간은 사회적 지위, 평가, 경쟁에 지극히 민감하다 - 타인의 생각과 시선의 영향력

사회적 감정(동료애, 연민, 존경, 존중, 감사, 희망, 공감, 친밀함, 애정 vs. 두려움, 적대감, 불안, 분노, 혐오, 질투, 조롱)

SNS에서는 사회적 감정을 교묘히 이용하는 것이 가장 활용하기 쉬운 보상과 처벌

상업적 SN플랫폼은 비용을 줄이고 성과를 높여서 이윤을 극대화하는 데 관심

돈이 덜 드는 방법(부정적 피드백 - 두려움이나 분노 같은 부정적 감정)을 선호

이용자들의 참여를 늘리려는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주된 목표가 점점 위력을 키우는 가운데, 우리는 부정적 감정이 긍정적 감정보다 증폭되고 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다. 참여와 간섭의 확대는 그저 기업들 자신의 발전을 위해서 필요했던 것이지만, 그런 상황이 결국 전 세계에 '쉬운' 감정(부정적인 감정)을 비정상적으로 증폭시키는 결과를 낳았다

manipulator

디지털 기술의 엄격함, bit의 단속적인 특성은 행동주의적 사고를 불러일으킨다

참여 -> 중독, 행동 수정

광고주 - 조종자manipulator

광고업 - behavior manipulation industry

플랫폼 - behavior manipulation empire

광고에서 직접적인 행동수정으로의 예기치 못한 변화는 인간사의 부정적인 측면을 엄청나게 증폭시켰다

monopsony

network effect / lock in - 새로운 서비스나 앱이 나와도 갈아타지 않고 기존의 서비스나 앱에 계속 머무르는 것

디지털 기술 관련 수요가 증가하며 새로운 유형의 거대 독점 기업이 탄생함

개인은 소셜미디어의 고객이 아니라 상품이기 때문에, 독점monopoly이 아니라 수요독점monopsony

다른 소셜미디어로 옮겨갈 선택지가 실직적으로 없으므로 사용을 완전히 중단하는 것이 유일한 선택지

중독<>자유의지

우리 대부분은 상대가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따라 자신의 행동을 수정해나감

눈에 안 보이는 조종자와 무정한 알고리즘이 제공하는 서비스에서 벌어지는 가차 없고, 기계적이며, 궁극적으로 무의미한 행동수정이 문제

소셜미디어 기업은 광고주의 정체를 잘 모르는 경우도 있어

구속에서 벗어나고, 더 진실한 삶을 살고, 덜 중독되고, 덜 조종되고, 피해망상을 덜 겪으려면 SNS 계정을 삭제해야

버머 중독자: 말다툼에 휘말리기를 바라기라도 하는 듯 걸핏하면 발끈하고 성을 내는 사람이 됨, 공격적인 성향


소셜미디어 사용 중단은 이 시대의 광증을 물리친다

가장 큰 문제: 타인의 행동을 수정하기 위해 돈을 낼 준비가 된 고객(광고주/조종자)을 찾는 비즈니스 모델

버머Bummer - Behaviors of Users Modified, and Made into an Empire for rent - 사용자들의 행동이 수정되어 왕국(대기업)을 위해 이용되는 것. 돈을 받고 제공하는 대중 행동수정 장치

버머의 부품들

관심 끌기가 중요해지면서 대두되는 관심 종자 우위 사회 - 평범한 사람이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보상: 관심. 관심 종자가 된다

모두의 삶에 참견하기- 알고리즘은 개인과 대중의 데이터에서 관련성을 찾ㅈ아 각 개인의 특성을 효과적이고 지속적으로 분석하여 각 개인의 예측 가능성을 평가하고 피드백을 통해 꾸준히 개선된다

의도한 내용을 자꾸 억지로 들이밀기 - 피드, 추천 엔진, 개인화

사람들의 행동을 최대한 교묘하게 유도하기 - 맞춤형 피드 전달 - 감정에 강력한 자극 - 중독(의식 못함) - 점점 더 열중하여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or 특정 행동/감정 유도(슬픔, 투표율, 브랜드 충성도 등)

최악의 꼴통이 사람들을 은밀히 조작해서 돈을 벌도록 내버려두기 - 버머 플랫폼을 공짜로 쓰는 이들은 대신에 데이터 공급원이 됨 (사용자, 뉴스공급 언론사 등). 근본적인 유인은 세부 규정을 압도한다.

가짜 군중과 위조자들의 사회 - 봇, AI, 가짜 리뷰어, 가짜 친구, 가짜 팔로워, 가짜 게시자, 자동화된 캣피싱 - 방대한 교뮤로 분위기를 조성하여 사회적 압력 형성

버머 장치 주변에 선을 그어 명확히 표시했으니, 우리가 피해야 할 것들 주변에 서을 그을 수 있게 됨

제3자(기업)에게 돈을 받고 내가 원치 않는 어떤 결정을 하게 만드는 서비스: 버머

버머는 피해야 할 기술이므로 계정을 없애야

소셜미디어는 당신을 꼴통으로 만들고 있다

Troll

아무리 봐도 소셜미디어가 생긴 뒤로 꼴통들이 세상에 목소리를 더 많이 내고 있다

단독-무리 스위치가 무리에 맞춰져 있을 때, 우리는 집단의 서열에 집착하고 그런 서열의 통제 하에 놓인다.

내면의 스위치는 보통 '단독'에 맞춰져 있어야 마땅하다 - 사람들은 세상에 관해 저마다 조금씩 다른 정보를 얻고, 그 정보에 접근하는 사고방식도 모두 조금씩 다름

자신을 스스로 소셜미디어에 내놓음으로써 자신의 정체성을 지운다 (집단 사고의 틀에 갇힘)

스위치가 무리에 맞춰지면 민주주의는 실패한다 - 자기편에만 표를 주고 개인을 숭배하듯 떠받든다 - 권위주의 팽배

집단의 의견을 모으는 과정은 참가자가 개별 구성원으로 행동할 때 가장 타당한 결과를 낸다

마스터 스위치

'단독'의 장점이 사라졌을 때 '무리'쪽으로 바뀜

더 큰 현실과의 집접적인 접촉에서 분리되면 사회적 상호작용이 가장 중요한 문제가 되고, 스위치가 '무리'로 전환

꼴통이 아닌 사람이 되는 쪽을 선택할 여지를 만들려면 관심이나 단순한 심리적 보상을 구하는 것 외에 그 어떤 것이든(먹고살기 등) 동기부여 단계를 많이 만들어야 - 궁극적으로 인류 결속, 문명화

선한 본성이 이끄는 곳으로

자기 스스로 원하는 만큼 친절하고 선한 사람으로 지내고 있는가? 언제 자신이 바라는 모습에 가깝고, 언제 짜증을 내며 경멸하는 성격이 나오는가?

가장 소중한 성격이 타락하도록 내버려두지 마라

소셜미디어는 진실을 훼손한다

(인터넷을 포함한 넓은 범위에서의) 동료 집단에 당신을 조종하려는 목적으로 만든 가짜가 많이 섞여 있다면, 알아차리지도 못하는 사이에 그들의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크다

가짜 사람들은 문화적 DDOS이다.

가짜 활동은 간접적으로 실제 사회적 현실을 만든다. 그런 가짜 활동이 돈이 된다는 뜻이다. 사람들은 그런 가짜 활동에 용케도 조종당한다

가장 어처구니 없는 음모로는 버머에서 시작되고, 가짜 사람들에 의해 증폭된 뒤, 극도로 편파적인 전통 매체에 등장하곤 한다

소셜미디어는 당신이 하는 말을 의미 없게 만든다

온라인에서 우리는 우리가 하는 말이 어떤 맥락에서 받아들여질지 알아낼 능력이 거의, 혹은 아예 없다.

극단적인 상황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언가를 표현할 때 그 맥락을 알 수가 없으며 그것이 남들에게 어떻게 전달도리지 알아볼 확실한 방법이 없다

우리가 하는 말의 맥락과 의미는 알고리즘, 특정 집단의 사람들, 알고리즘이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짜깁기해서 가짜로 만든 사람들 무리에 의해 정해진다.

맥락이 플랫폼에 굴복할 때, 사람들 간의 소통과 문화는 하찮고 피상적이며 빤한 것이 된다.

예측 불가능한 맥락에서 짧게라도 살아남는 무언가를 말하려면 정신 나갈 정도로 극단적이지 않고서는 불가능(오로지 꼴통 같은 의사소통)

쓸데없이 모든 사람에게 관심을 갖는 것보다, 중요한 몇 사람과 깊은 관게를 나누는 것이 더 중요하다면 어떨까?

팟캐스트는 여전히 스토어와 구독에 의존하고 있다. 그래서 개인대 '집단-알고리즘-배후의 조종자' 구도가 아니라, 개인 대 개인 구조를 유지한다.

소셜미디어는 공감 능력을 없앤다

사람들이 모두 자기 휴대폰에 집중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를 느끼기 힘들어진다. 사람들이 경험할 내용은 멀리 있는 알고리즘이 계획하고 만든다. 휴대폰을 치우지 않으면 그 공간에 함께 있는 사람들이 침해되지 않은 공통성을 만들어 나가기 힘들다.

'공감'이 가능하려면 최소한 다른 사람들이 보는 것을 엿볼 수는 있어야 한다

노골적으로 전달되는 암흑 광고보다 알고리즘으로 피드를 교묘하게 조절하는 것이 더 두렵다

우리 자신의 세계관이 왜곡되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라, 타인의 세계관에 대한 이해까지 낮아진다

우리가 보는 세계의 모습은 우리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사람들에게는 안 보이고, 그 역도 마찬가지다

버머가 서로의 마음을 읽을 여지를 빼앗기 때문에 우리는 서로의 눈에 미친 사람으로 비친다

그저 다른 사람들이 무얼 보는지 알 기회가 유례없이 줄어들면서, 서로를 이해하기 힘들어진 것

소셜미디어는 당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사람들이 서로 연결되는 건 물론 좋은 일이지만, 왜 우리가 그런 연결의 대가로 제3자에 의한 조종을 감내해야 하는가?

버머 사업 모델의 핵심 전략은 사용자의 참여 최대화를 목표로 시스템이 자동 조절되는 것이다. 사람들의 주의를 끌어모을 때 부정적인 감정을 자극하는 방법이 가장 손쉬우므로, 그런 시스템은 분명 사람들을 기분 나쁘게 만들 방법을 찾으려 들 가능성이 크다.

버머는 물론 당신을 불행하게 만들 것이다. 그런데 어떤 방법으로? 말할 것도 없이 당신에게 딱 맞는 유형의 불행이 전달될 것이다.

나는 중독되고 조종당한다는 사실이 불쾌하다. 그런데 그게 전부가 아니다. 버머는 불공정하고 비열한 경쟁에서 아무런 중요한 목적도 없이 남들에게 평가받는 기분을 느끼게 만든다.

이 알고리즘은 근본적으로 플랫폼 소유주와 광고주들에게 득이 되는 쪽으로 작용하며, 그들은 우리를 추상화해야만 우리를 조종할 수 있다.

난생 처음으로 우리 각자의 즉흥적인 생각과 기이한 습관들이 거대한 권력의 현미경 아래에 놓이게 됐다.

지속적인 평가에서 벗어나 나를 창조할 공간을 만들 수 없는 것, 그것이 바로 우리 기분을 망친다.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를 꿰뚫어 봐야 한다. 갑자기 우리 자신을 포함한 모든 이가 전혀 요청한 적이 없는 멍청한 경쟁 속으로 떠밀려 들어가고 있다.

사회적 불안감이 이렇게 조금씩 꾸준히 조성되면 사람들은 더 집착하고 매달리게 된다.

모든 사람이 모든 사람과 맞붙고, 대부분은 늘 패할 수밖에 없는 최악의 스포츠다.

평범한 사람들이 최대한 행복하게 만족하며 살려면, 소셜미디어 통계 수치에 대한 집착에서 잠시 벗어나 좋은 시간을 한껏 즐기고 서로에게 직접적인 관심을 쏟아주어야 한다.

그거 나는 어째서 삶의 중요한 부분을 나와 관련 없는 어떤 낯선 사람에게 저당잡혀야 하는지 묻고 싶을 뿐이다.

소셜미디어는 당신의 경제적 존엄을 바라지 않는다

좋은 점을 누리기 위해 반드시 안좋은 측면을 감수해야 하는 건 아니다. 부작용이 있을 수밖에 없다고 믿는 유일한 이유는 우리가 버머에게 길들여져 있기 때문이다.

사회를 미치게 만드는 방법으로 풍요로운 사회를 이룩할 수는 없다. 여기서 벗어날 유일한 방법은 버머 기업들이 다른 방식으로 돈을 벌 수 있도록 사업모델을 바꾸는 것뿐이다.

한 가지 방법은 검색이나 소셜미디어 같은 서비스가 직접 수익을 내는 구조를 만드는 것이다.

나는 세상 사람들이 원하는 무언가를 만든 기업이라면 부자가 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런 합의의 결과로 개인들이 점점 더 위태로운 처지에 몰려서는 안 된다고 본다. 자본주의는 본래 제로섬 게임이 아니다.

인간이 쓸모없다는 환상은 사람들의 가치를 깎아내릴 뿐 아니라, 기본 데이터가 개선되지 않아서 인공지능이라 불리는 프로그램들의 기능을 저하시킬 수도 있다.

당신이 받는 서비스는 무료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또다른 누군가가 대가를 치르고 있다.

모든 사람이 네트워크 효과에 중독되고 꼼짝없이 묶여 있어서 모두가 버머 데이터를 제공하고 있다.

온라인에 제공한 데이터의 가치만큼 돈을 받는 새로운 시대가 열리면 세상이 지금보다 덜 어둡고 덜 이상한 곳이 될 것이다.

노동으로서의 데이터Data as Labor

버머에 의존하는 기업은 사업 활동(원가 중심점)을 원하는 대로 다각화할 수 있지만, 이익중심점은 절대 다각화하지 못한다

버머 기업이 문을 닫게 만들어서는 안 된다. 대신 그들에게, 스스로를 위해서라도 사업모델을 혁신해야 한다고 요청해야 한다.

인플루엔서가 되거나 그와 비슷한 경지에 오르면 웬만큼 먹고살 수 있겠다고 생각할 텐데, 현실은 완전히 딴판이라 대비책을 만들어두어야 한다.

문제는 버머 경제에서는 주연은 아니지만 주연에 상응하며 넉넉한 보수를 받을 수 있는 역할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소셜미디어는 정치를 무력화한다

무언가가 젊은이들을 민주주의에서 멀어지게 만들고 있다. 소셜미디어 기업들의 희망에 찬 자축에도 불구하고, 민주주의가 약해지면 온라인 세계는 더 추하고 기만적인 곳이 되는 듯하다.

가장 고약하고 끔찍한 피해망상을 불러일으키는 메시지가 가장 큰 주목을 받으며, 사용자는 그런 메시지에 밑도 끝도 없이 사로잡혀 통제 불능의 불안정한 감정 상태가 된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버머는 다른 목적보다는 은밀하고 악의적인 조종에 더 잘 어울린다.

짜증을 더 많이 느끼게 되고, 자신과 다른 부류의 사람들과 소통하기가 조금 더 힘들어져서 고립되고, 결국에는 정치적으로 온건파이거나 독단적인 사람들을 잘 용인하지 못하게 된다.

상처 입은 사람들 대다수는 버머에 완전히 중독된 나머지 버머를 칭찬하는 것 외에는 달리 할 수 있는 게 없다

소셜미디어는 희망만 있으면 사회를 발전시킬 수 있다는 환상을 키웠다.

가짜로 만든 세상에서 거들먹거리며 활보하고, 보잘것없는 환상에 사로잡혀 있으며, 위태로운 분노가 가득한 외로운 남성의 모습은 별로 낯설지 않다.

버머는 진보도 보수도 아니다. 그저 친피해망상, 친흥분, 친꼴통 근성일 뿐이다.

버머에 중독된 진보주의 지도자라면 트럼프보다 나을 게 전혀 없다. 버머와 결탁한 지도자라면 좌익이든 우익이든 다를 바가 없다.

페이스북과 그 밖의 버머 기업들은 인간의 주의 집중을 담보로 하는 랜섬웨어가 되어가고 있다. 그들은 날마다 너무 많은 시간 동안 너무 많은 사람의 주의를 너무 많이 붙드는 뇌의 문지기 같은 존재가 되었다.

버머는 사람들이 짜증을 내며 집착하거나 분열되어 서로 화를 낼 때 돈을 더 많이 버는데, 이는 러시아 측의 이해관계와 완벽히 맞아떨어진다. 버머는 쓰레기 같은 존재다. 진실한 조직을 냉소적인 분열에 빠져들게 만든다. 본질적으로 무자비한 사기 행위다.

소셜미디어는 당신의 영혼을 싫어한다

(정리) 다른 사람들의 피드에 어떤 내용이 전달되는지 알 수 없고 다른 사람들도 우리 피드를 볼 수 없게 되면서 타인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힘들어졌다. 우리가 어떤 맥락에서 이해될 것인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공감을 기대하기도 힘들어졌다. 우리는 꼴통 같은 사람들이 되어가고, 행복감은 낮아지고 있다. 이런 현상들은 버머가 초래한 또 다른 피해인, 거울상이다. 세상을 알고 진실을 아는 우리들의 능력이 저하되는 가운데, 우리를 알아보는 세상의 능력도 변질됐다. 정치는 비현실적이며 무시무시해져가고, 경제는 비현실적이며 지속 불가능해지고 있다. 이는 동전의 양면이다.

당신이 가지고 있던 자유의지는 일부가 그들에게 이전되었다.

지도자들에게만 하늘이 권한을 내렸다고 설명하는 종교들과 비슷한 유형의 주장

종교가 사람들을 최대한 열정적으로 '참여'시키려고 애쓰는 과정에 발생했던 해묵은 갈등이 버머에서도 똑같이 나타난다.

어떤 체계를 통해 그렇게 보고 들었다는 이유만으로 무언가를 믿으면, 자신의 인식력을 그 체계에 넘겨줘버리게 된다. 버머 중독자들은 버머를 이용하기 위해 몇 가지 터무니없는 개념을 용인할 수밖에 없다.

진실 추구의 근본은 자신의 무지를 알아차리는 능력이 되어야 한다. 모른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과학과 영성에 공통으로 내재된 아름다운 특징이다. 그런데 버머는 그런 특성을 거부한다.

바이럴리티virality는 버머 정치, 버머 예술, 버머 상거래, 버머 삶을 위한 진실이다.

현대인들에게 목적의식이 결핌되어 있다고 보고 모든 사람이 반드시 목적의식을 갖도록 만들겠다고 일개 기업(페이스북)이 나선 것이다. 이것이 새로운 종교가 아니라면 달리 무엇이겠는가?

구글은 '죽음을 해결하는' 프로젝트에 투자했다. 그야말로 종교를 자처하는 행보

당신 안의 가장 신성한 부분을 좌지우지하겠다는 목표를 곧바로 겨냥했다. 버머는 먼저 당신을 소유하지 않으면 그 어떤 것도 소유할 수가 없다.

의식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라, 의식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구글이 그것을 소유하겠다는 뜻이나.

버머 기업이 수많은 사람들에 관한 방대한 정보를 얻고 삶에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어쩐지 자연스럽고 적절하게 느껴지도록 그들이 교묘하게 논리를 이끌어가고 있다.

인간을 대상으로 하는 지속적인 감시와 행동수정 실험은 앞으로 개발될 인공지능의 능력에 녹아들 것이다.

인공지능은 컴퓨터 과학자들이 정부 기관의 연구 보조금에 의존하던 시절에 연구비를 받아내려고 만들어낸 개념인데, 우리는 그 사실을 망각하고 있다. 인공지능은 필요에 따라 만들어낸 허구의 소설이다. 그런데 그 소설이 이제는 작가를 능가하기에 이르렀다.

인공지능은 환상이며, 프로그램 코드를 설명하는 하나의 방식에 불과하다. 엉성한 공학 기술을 덮어 감추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

내게는 의식이 있다. 나는 다른 사람에게도 의식이 있다고 믿는다. 우리는 각자 경험한다. 경험은 경의롭다.

우리는 경험을 인정할 수 있고, 즐길 수 있고, 그 신비로움에 감정적으로 반응할 수도 있고, 더 나아가 긍정적인 감정을 느낄 수도 있다. 사람이 기계 이상임을 이해하기 때문에 그런 경험이 존재한다는 것을 인정하면 더 다정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상대방에게도 숨겨진 경험의 중심, 온전한 세계, 영혼이 있다는 것을 믿는다면, 상대에게 상처를 주기 전에 한번 생각해볼 가능성이 조금 더 커질 것이다.

의식과 경험에 대한 믿음을 억압하고 인간성의 예외적인 특성을 모두 거부하는 사회를 구상한다면, 사람들이 기계 같은 존재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것이 버머의 세상에서 나타나고 있는 일이다. 버머의 관점에서 우리는 버머 플랫폼이라는 위대한 초개체 내에 있는 하찮은 일개 세포에 불과하다.

전세계적으로 나타나는 서로 관련 없어 보이는 문제들을 해멸할 보편적인 열쇠는 바로 영적 불안이다.

사람이란 무엇인가? 정의가 어떻게 됐든, 만일 사람이 되고 싶다면, 소설미디어 계정을 삭제하는 편이 낫다.

결론

소셜미디어 계정을 없앤다고 친구들과의 연락이나 인터넷에서의 활동을 포기해야 하는 건 아니다. 메일 주소록을 활용하고, 개인 웹사이트를 만들어봐도 좋다. 

스스로 삶을 탐색할 선택 기회를 누리기를 간절히 바란다. 당신의 뇌와 인생이 틀에 박힌 것이 되지 않도록 확실히 대비해야 한다. 야생으로 나가거나 새로운 기술을 배워볼 수도 있다. 위험을 무릅쓴 시도를 해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