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5.

가계부 이제 그만 쓰련다

컴퓨터를 뒤져보니 2009년 가계부 엑셀 파일이 나왔다. 2009년은 내가 임용고사 공부를 그만두고 서울로 올라가 일을 시작한 때다. 10, 11월엔 월 104만 원을 받았고, 2010년엔 월 129만 원을 받았구나. 서울에서 자취하며 오토바이까지 타려니 잔액은 항상 100만 원에서 0원을 왔다 갔다 했다. 돈이 없어서 어떻게든 아껴보려 그랬는지, 그때부터 가계부를 꼼꼼하게 쓰기 시작했다.
햇수로 7년. 해가 갈수록 가계부에 들어가는 수식은 복잡해졌지만, 더 정확하고 간결했다. 구글 설문지를 이용하면서부터는 지출과 동시에 스마트폰에서 가계부를 기록했다. 가계부의 잔액과 실제 통장 잔액이 정확히 일치해야 했기 때문에, 단 10원도 틀리지 않게 기록하려 노력했다.
가계부 기록에는 집착했으나, 기록한 내용을 다시 검토한 적은 많지 않다. 중고로 팔 가방을 얼마에 샀는지 찾아본다거나, 서핑샵 1년 회원권 시작일이 언제인지 찾아보는 정도였다. 매달 식비로 얼마가 들었는지, 쓸데없는 지출은 없었는지 등을 검토하진 않았다. 그저 기록에만 집착했다. 물론 그 자체로 의미 있을지도 모르지만, '빼먹지 말고 모두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이 점점 더 커졌다. 지출 내용을 한동안 입력하지 않으면, 까먹기 전에 입력해야 한다는 생각에 불안했다.
가계부를 쓰는 일보다 더 중요한 건 필요에 의한 합리적인 소비다. 충동적 과소비가 아니라, 처음부터 자신이 의도한 대로 목적에 충실하게 지출해야 한다. 돈을 생각 없이 쓰고 꼼꼼히 기록하는 것 보다, 기록하지 않더라도 매번 합리적인 소비를 하는 게 더 낫다.
그래서 오늘부로 가계부 기록을 중지한다. 모든 지출과 수입을 정확히 기록해야 한다는 부담을 떨쳐낸다. 기록하는 데 낭비하던 에너지를 아껴서, 차라리 합리적인 소비를 고민하는 데 쓰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