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0. 14.

세네카, 《인생이 왜 짧은가》

루키우스 안나이우스 세네카(지음), 천병희(옮김), 《인생이 왜 짧은가》, 숲, 2005년.

세네카(Seneca)란 이름은 사진가 에릭 김(Eric Kim)의 블로그에서 처음 접했다. 에릭의 글을 읽으며 세네카의 사상이 매력적이고, 스토아학파였다는 사실 정도만 기억하고 지나쳤다. 며칠 전 도서관에서 철학 영역을 지나가다 그 이름이 떠올랐고, 바로 검색하여 [인생이 왜 짧은가]라는 책을 빌려왔다.
이 책은 ‘대화들’(dialogi)이란 이름이 붙은 세네카의 철학 수필 10편 중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De brevitate vitae), <마음의 평정에 관하여>(De tranquillitate animi), <섭리에 관하여>(De providentia), <행복한 삶에 관하여>(de vita beata)를 실었다. 그 중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는 세네카의 수필 중 걸작으로 꼽힌다. 그래서 이 책의 첫 부분을 차지하고, 책 제목도 《인생이 왜 짧은가》로 지은 것 같다.
우선 <인생의 짧음에 관하여>만 읽었다. 소제목이 붙은 20개의 장으로 나뉘어 있고, 주제가 조금씩 다르지만, 핵심은 시간이다. 시간을 기준으로 세 부분으로 나누고, 철학의 필요성을 덧붙여 정리해봤다.
  1. 시간의 속성
  2.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
  3.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
  4. 철학의 필요성

시간의 속성

시간은 충분하지 않고, 끝을 알 수 없으며, 형체가 없다. 우리가 태어난 순간 출발한 그대로 죽음을 향해 계속 달린다. 현재는 순간순간 지나가서 짧으며, 미래는 다가오지 않아 불확실하며, 오직 과거만이 확실하다.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

우리는 시간의 속성을 잊고 살기 때문에, 어리석다. 시간을 낭비하는 줄 모르고, 수명이 짧다고 불평만 한다. 자기 재산은 꼼꼼히 관리하고 악착같이 지키면서, 시간은 남에게 그냥 내준다. 남의 소원 이뤄주느라 자신의 소원은 못 이룬다. 하는 일 없이 분주하며, 특히 남의 기준에 자기를 맞추느라 분주하다. 자기 인생의 대부분을 남을 위해 소모한다. 쓸모없는 학문에 몰두하고, 여가를 제대로 즐겨보지 못한다. 인생을 대가로 관직과 명예, 성공을 산다. '언젠가 자신을 위해 살게 될 것'이라는 달콤한 위안으로 현재의 노고를 견딘다. 불확실한 미래를 기대하며 현재에 싫증 내고 오늘을 놓친다. 과거를 망각하고 현재를 소홀히 하고 미래를 두려워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않는 사람

시간을 탐한다. 주어진 시간을 오직 자신을 위해 비워두고, 놀리거나 낭비하지 않고, 남의 지배를 받지 않고, 타인에게 빼앗기지 않는다. 언제나 온전하고, 흔들리지 않는 자유를 누리고, 남에게 매이지 않고, 자신의 주인이다. 순간을 자신의 필요에 따라 쓰고, 하루를 마치 자신의 전 인생인 양 꾸려나간다. 자신의 여가를 '의식'하고, 선취한다. 내일을 바라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으며, 언제 마지막 날이 오더라도 머뭇거리지 않고, 흔들리지 않는 발걸음으로 죽음을 향해 나아간다. 분주하지 않고 근심에서 벗어나 마음이 차분하다.

철학의 필요성

부모는 선택할 수 없지만 고귀한 지성의 계보는 선택하여 가멸성을 연장하고 불멸성으로 바꾸며, 축성된 지혜를 얻을 수 있다. 철학은 무한하고, 영원하고, 우리를 더 나은 것과 맺어주며, 철학을 위해 시간을 내는 사람만이 여가를 즐긴다. 미래를 걱정하며 현재를 낭비하는 게 아니라, 위대한 철학자의 시간을 내 것으로 만들어 과거를 무한히 연장한다.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고귀한 학문, 미덕에 대한 사랑과 실천, 욕망의 망각, 삶과 죽음에 대한 지식, 마음의 안식을 추구하라.

필요한 물건을 사기 위해 돈이 필요하다. (생산 수단을 가진 사람을 제외하곤) 돈을 벌기 위해 특정 시간 동안 노동력을 제공한다. 돈과 시간을 맞바꾸는 형태지만, 실제로 시간이 훨씬 더 소중하다. 갑자기 암에 걸려 시한부 인생을 선고받았는데, 5년 더 살 수 있는 약이 개발되었다면, 과연 얼마까지 지급할 용의가 있을까? 5년 치 연봉? 아니면 전 재산? 당연히 후자일 것이다. 그런데도 우린 시간을 소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남의 부탁을 들어주느라 자신의 시간을 낭비하는 사람이 많다. 돈은 공짜로 주지 않으면서, 시간은 공짜로 준다. 돈을 아끼기 위해 버스를 기다리고 또 기다린다. 택시를 탔으면 진작에 도착하고 남았을 시간인데도 말이다. 물론 시간이 남고, 돈이 부족한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낭비하는 시간이 아끼는 돈만큼 가치가 있는지 항상 따져봐야 한다.
결국, 시간의 소중함을 인지하고, (돈이 아닌) 시간 낭비를 멈춰야 한다. 돈보다 더 악착같이 내 시간을 지켜야 하며, 내 의지대로 내가 원하는 곳에 써야 한다. 흔한 표현이지만,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인 양 하루를 살아야 한다. 시간을 의식해야 한다. 좋아하는 일에 몰두한다면, 시간의 흐름은 잊어도 좋다. 하지만 지금 남 좋은 일을 하고 있거나, 남이 부탁한 일이거나, 쓸모없는 학문을 탐구하거나, 불확실한 미래를 대비하느라 원치 않는 일에 시간을 낭비하고 있다면, 그만둬야 한다. 내게 소중한 시간을 어디에 쓰고 있는지 의식해야 한다.
일은 줄이고, 여가를 즐겨야 한다. 모두 행복하기 위해 산다고 하지만, 돈을 더 벌기 위해 일에 파묻혀 사느라 불행하다. 지금 고생해서 돈을 벌면, 미래에 행복할 것이라 착각하며 자신을 혹사한다. 그렇게 건강을 잃으면, 시간과 돈 모두 잃는다. 누굴 위해 공부하는가? 누굴 위해 번듯한 직장에 집착하는가? 누굴 위해 좋은 차를 사는가? 나 자신인가, 타인의 시선인가. 모든 일의 중심은 자신이어야 한다. 남 기준 맞추느라 인생과 시간을 허비하는 사람이 가장 어리석다.
언제 죽을지 모른다. 60세, 80세까지 산다고 가정하고 인생 계획을 세우지만, 의미 없다. 다가올 미래는 예측할 수가 없다. 현재는 순간순간 지나가므로, 확실한 것은 과거뿐이다. 앞으로 몇 년을 더 살 수 있을지 모른다. 하지만 확실한 건, 내가 살아온 32년의 과거다. 그리고 내 삶은 1985년에 시작됐지만, 그 이전으로 무한히 오래된 과거가 있다. 인류의 조상은 문명과 문화를 만들어냈으며, 수많은 철학가가 위대한 사상을 남겼다. 내가 운 좋게 사고나 병치레 없이 늙어 죽는다 해도, 고작해야 앞으로 50년 정도 남았을 것이다. 그냥 살면 80년짜리 인생이다. 하지만 내가 태어나기 전에 집대성된 학문과 사상, 철학의 역사는 수천 년이다. 특히 철학은 모든 시대의 위대한 인물과 사귀며 과거의 경험을 공유할 수 있으므로, 짧은 인생을 무한히 연장해 준다.
시간의 속성을 잘 모르며, 낭비하기 쉽다는 사실은 인지했다. 미래는 불확실하고 예측할 수 없다는 것도 이해했다. 과거와 현재만 남았다. 과거는 철학을 공부함으로써 되돌아보고, 연장할 수 있다. 그렇다면 현재는 어떻게 보내야 하는가. 여가를 즐기면 되나? 좋아하는 일에 몰입해야 하나? 세네카가 쓴 다른 수필을 찾아 읽으며, 그 길을 알아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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