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시계를 차지 않는 다섯 가지 이유

90년대 당시 학생이라면 누구나 차던 DOLPHIN 전자시계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약 10개 정도의 손목시계를 찼던 것 같다. 다수가 저렴한 시계였고, 가장 비싼 시계가 최근에 잠깐 차다 판 애플와치였다. 애플와치를 판매한 후, 그 전에 차던 3만 원짜리 카시오 전자시계를 다시 차다가, 벗어놓은 지 한 달쯤 된 것 같다. 지금은 어디 있는지도 모르겠다. 버렸을 수도 있다.
여자의 핸드백에 비교되는 남자의 액세서리가 아마 손목시계일 것이다. 웬만한 남성잡지엔 손목시계 광고가 여러 면을 차지한다. 대부분의 광고에선 멋진 모델과 현혹하는 문구로 '비싼 손목시계를 차야 멋진 남자야'라는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그래서 허세를 부리고 싶지만 돈 없는 고등학생은 (어울리지 않게) 큰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며, 돈을 벌기 시작한 직장인은 무리해서 비싼 시계부터 산다. 좋은 시계가 자신의 정체성을 대변한다고 믿기 때문일까. 아니면 사회적 지위? '남자의 자존심 = 손목시계'라는 등식은 어느 카피라이터가 처음 쓰기 시작했을까.
어릴 때부터 습관적으로 손목시계를 차고 다녔고, 항상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다. 무의식적으로 시계를 갖고 싶었던 것 같다. 하지만 미니멀리즘을 실천하면서, 손목시계를 벗고 다녀 봤다. 불편해지거나, 달라진 점은 전혀 없었다. 그래서 손목시계를 당분간 차지 않기로 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다.
  1. 시간을 확인할 일이 별로 없다: 내 경우, 업무시간이 크게 중요하지 않다. 저녁에도 별다른 (중요한) 일정이 없으므로, 시간을 확인할 일이 적다. 무언가에 몰입해야 할 땐, 일부러 시간을 의식하지 않으려 한다. 특히 여자친구와 있을 때는 아예 시간을 확인하지 않는다.
  2. 
필요하면 컴퓨터나 스마트폰을 이용하면 된다: 시계의 원초적 기능은 현재 시각을 알려주는 것인데, 일할 때는 모니터에서, 평소엔 스마트폰에서 확인하면 된다. 스마트폰은 항상 갖고 다니므로, 굳이 손목시계까지 차고 다닐 이유가 없다. 시계에 아무리 좋은 기능이 들어가도, 웬만한 건 스마트폰으로 해결할 수 있다.
  3. 
물건은 나를 대변하지 않는다: 시계는 내 정체성과 무관하다. 비싼 시계를 찬다고 해서 내가 더 값진 사람이 되는 것도 아니며, 싼 시계를 찬다고 해서 내가 싸구려가 되는 것도 아니다. 내 어떤 면도 시계로 표현하고픈 생각은 전혀 없다. 그러므로, 없어도 무관하다.
  4. 거추장스럽다: 꽉 조이면 살에 눌린 자국 생기고, 조금 풀면 앞뒤로 왔다 갔다 덜그럭거린다. 여름엔 땀 차서 신경 쓰이고, 바이크 라이딩 장갑 끼기에 불편하다. 손목시계를 차지 않으면, 손목이 가볍고 홀가분해서 기분이 좋다.
  5. 집착이 생긴다: 시계가 비싸면, 온갖 걱정이 따라붙는다. 흠집나지 않도록 애지중지 조심스레 차고 다녀야 하고, 운동이라도 할 땐 빼 놔야 하고, 누가 훔쳐가진 않을지 걱정도 해야 하고. 더 좋은 시계를 보면 왠지 내가 초라해 보이고. 더 좋은 시계로 바꾸고 싶고. 중고로 얼마에 팔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하고. 물건을 소유한다는 것 자체가 곧 집착이고, 집착은 고통이다.
현재 내겐 손목시계가 필요한 이유보다 필요없는 이유가 훨씬 많다. 그래서 '손목시계를 차야 한다'는 습관을 없앴다. 혹시 미래에 필요한 이유가 생기면, 구입할 것이다. 그런데, 그럴 것 같진 않다. 남에게 손목시계를 차고 다니라고 강요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강요해도 듣지 않을 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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