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발로 빗속을 걷다

알람이 울렸는데, 덥지 않다. 보통 일어날 때가 되면, 더워서 에어컨을 잠시 켜곤 했는데, 오늘은 이상하게 덥지 않다. 힘겹게 일어나 밖을 보니, 비가 내린다. 정말 오랜만의 비다. 타는 듯한 더위가 끝없이 이어질 줄 알았는데, 거짓말같이 비가 내렸고, 공기는 차가웠다.
출근 준비를 한다. 샤워하고, 간단하게 아침을 먹고, 발 닦을 수건과 우산을 챙긴다. 운동화를 신으면 다 젖을 테니, 슬리퍼를 신고 아파트 현관을 나섰다. 낯설다. 우산을 써도 비는 무릎까지 다다른다. 이미 발은 흠뻑 젖었다. 아스팔트의 가장 낮은 곳으로 물줄기가 생겼고, 때론 밟고 때론 피하며 걸어간다.
바닥의 모래와 작은 돌이 발바닥과 슬리퍼 사이에 걸려 잘 빠지지 않는다. 거슬리지만, 기분이 나쁘지 않다. 잠시 멈춰 슬리퍼를 벗어 집어 들고, 맨발이 되었다. 맨발로 걸었다. 시멘트와 아스팔트 위를 그냥 맨발로 걸었다. 발이 더러워질 걱정은 없다. 빗물이 계속 씻어주니.
마지막으로 맨발로 빗속을 걸은 게 언제인지 기억나지 않는다. 바닷가 백사장을 제외하고, 그냥 맨발로 걸은 기억도 가물가물하다. 그런데 묘하게 기분이 좋다. 발바닥 전체로 느끼는 차가운 빗물과 오돌토돌한 바닥이 신선한 자극을 준다.
10분 남짓한 짧은 시간이지만, 맨발로 빗속 걷기는신선한 충격이었다. 최근 느낀 그 어떤 신체적 자극보다 새롭고 기분이 좋았다. 어쩌면 신발의 보호를 받지 않고 맨발로 대지를 딛는 것이 인류의 조상이 생활하던 환경과 닮아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우리 뒤꿈치는 자기 몸무게로 인한 충격은 충분히 흡수하도록 만들어졌다. 발바닥에 굳은살이 생기는 것도 맨발로 걸어 다닐 때 발바닥을 보호하기 위해서 진화한 결과일 것이다.
발을 보호하기 위해 신발을 신는다. 신발과 발 사이의 마찰을 줄여주고, 땀 흡수를 위해 양말을 신는다. 발은 양말과 신발 덕분에 안전하지만, 한편으론 갇혔다. 대기와 호흡할 수 없고, 대지와 접촉할 수 없다. 발에 감정이 있다면, 안전해서 행복할까? 아니면 답답할까?
난 비가 올 아침을 기다린다. 마침내 비가 내리면, 또다시 맨발로 걷겠다. 인류 조상이 그랬듯, 아무 장애물 없이 내 발바닥으로 대지를 힘껏 내딛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