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 원칙과 미니멀리즘

우리의 뇌는 1만 년 전 인류의 뇌와 다르지 않다. 수렵과 채집을 통해 생존한 인류의 조상은 살아남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을 소유해야 했고, 만약을 대비해 필요 이상의 물건을 비축해야 했다. 야생 동물을 사냥하기 위해 사냥 도구를 소유해야 했고, 추운 겨울을 대비해 음식과 여분의 옷을 비축해야 했다. 그렇지 못하면 살아남아 번식하지 못했다. 이렇듯 물건을 소유하고 비축하는 것은 생존과 종족 보존이라는 적응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인류가 진화하며 터득한 심리적 적응형태(인간 본성)인 것이다.
인간은 일반적으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한다. 식량이 부족했던 원시 시대에는 (에너지가 풍부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것이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에, 그렇게 진화했다. 하지만 지금은 식량이 부족하지도 않고, 비교적 쉽게 구한다. (동네마다 24시간 편의점이 한두 개씩은 꼭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고 기름진 음식을 좋아하는 인간의 본성은 생존에 유리한 방향이 아니라 오히려 불리한 방향으로 작용한다. 본성대로 먹으면 비만이 되기 쉽고, 비만은 각종 합병증을 유발해 생존에 불리하며, 이성에게 호감을 사는데도 마이너스가 되어 번식에도 불리하다. 따라서 현대의 우리는 의식적으로 본성에 반하는 행동(다이어트, 운동 등)을 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런 것을 '사바나 원칙'이라 한다. 인간의 두뇌는 인류 초창기 환경(식량 부족)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상황(식량 과잉)을 파악하고 대처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것이다(비만).
과거에는 생존에 필요한 물건만 소유했다. 하지만 지금은 값싸고 질 좋은 물건이 넘쳐난다. 하지만 소유욕이라는 인간 본성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필요하지 않더라도 물건을 소유하고 비축한다. 물론 이것이 생존에 당장 불리하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번식에도 큰 장애물은 아니다. 하지만 필요 없는 물건을 과도하게 소유하는 것 자체만으로 심리적 스트레스를 받는 게 문제다. 사 놓고 읽지 않는 책, 산 지 1주일만 사용한 러닝머신, 게임이나 하는데 쓰는 아이패드, 안 입은 지 3년도 넘은 재킷, 헤어진 지 10년도 넘은 옛 애인의 편지까지. 필요 없는 물건은 물리적 공간뿐만 아니라 심리적 공간까지도 차지한다.
'언젠가 써야 하는데. 일단 두자.'
'그래도 살 땐 비싸게 샀는데. 팔거나 버리긴 좀 아깝다.'
'살 빠지면 입을 거야. 내일부터 운동해야겠다.'
'그래도 옛 추억이 담긴 물건인데.. 버리긴 좀 그렇다. 일단 저기 넣어놔야지'
이렇게 필요 없는 물건은 그 자리에 며칠, 몇 주, 몇 년씩 꿋꿋이 있으면서 우리에게 무언의 심리적 압박을 준다. 생존에는 큰 지장이 없다. 다만 스트레스를 주며, 주의를 분산한다.
다이어트도 일종의 미니멀리즘이다. 달고 기름진 음식만 먹다간 살이 쪄서 생존에 불리하니, 식단 조절을 해야만 한다. 꼭 필요한 음식만 섭취해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산다. 소유욕을 충족하느라 필요 없는 물건까지 구입하여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행복한 삶을 사는데 방해가 되니, 필요 없는 물건은 없애야 한다. 그래야 소중한 것에 집중할 여유가 생긴다. 단지 물건 뿐만 아니다. 인간 관계도, 일도, 인터넷도 마찬가지다.
미니멀리즘은 다 갖다 버리고 텅 빈 방에서 채식주의자로 사는게 아니다. 무의식적으로, 본능에 이끌려 하는 모든 행동에 의문을 제기하는 것이다. 배는 부른데 왜 남은 국물을 끝까지 다 먹는가? 필요없는 물건인데 왜 샀을까? 버리면 되는데 왜 못 버리고 계속 갖고 있는가? 끊임없이 자기 자신에게 물으며, 핵심만 남기고 그 외에 쓸데없는 것은 제거해 나가는 것이다.
인간 본성에 의문을 제기하기. 무엇이 소중한지 발견하기. 소중한 것에 집중하기 위해 방해 요소를 줄이기. 이것이 미니멀리즘의 핵심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