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3. 13.

내가 생각하는 사진 작가란?

인지심리학 관점에서 잘 기억되기 위한 조건은 반복되거나 기존 지식과 연관될 경우. 반복은 그렇다 치고, 기존 지식과 연관되기(또는 시키기) 위해서 좋은 방법은 풍부한 경험 또는 학습으로 이미 많은 지식이 있어야 함. 따라서 많은 직접 경험은 스키마을 확장시켜주고, 새로운 지식이 들어왔을 때 쉽게 연관될 수 있는 기초가 됨.

한편, 우리는 사진을 언제 찍는가? 본 풍경이 감정의 변화를 일으켰을 때. 장엄하거나, 슬프거나, 좋거나, 참혹하거나, 아름답거나, 부럽거나 이러한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장면을 보면 사진을 찍게 됨. 물론 그 감정을 느끼는 순간, 기억에도 남게 됨. 직접 경험이니까. 사진의 장점은, 점차 선명도가 떨어지는 기억과는 달리 그 순간을 정확히 저장해 둠으로써 나중에 그 사진을 다시 보면 그때의 기억과 함께 그때 느꼈던 감정까지 되살리는 기능을 함.

여행하며 사진을 왜 찍나 고민을 많이 해봤음. 현재 눈 앞에 펼쳐지는 장관를 온몸으로 민끽하고 매 순간에 몰입해야한다는 관념과, 그래도 사진으로 잘 찍어 남겨두어야 한다는 관념의 충돌. 왜냐하면 나중에 사진을 다시 본다는 의미는 곧 과거을 추억하고 회상한다는 뜻이므로, 현실 몰입의 원칙에 위배되기 때문.

하지만 위와 같은 사유를 거친 결과 나름대로 정리가 됨. "어떤 것을 보고, 특정한 감정을 느껴 기억에 남은 순간이 있다. 그 감정과 감정으로 인한 기억은 그때는 생생하지만, 점차 약해지거나 사라지기까지 한다. 그 때 찍어둔 사진은 그 기억이 약해지거나 사라지지 않도록, 심지어 더욱 생생하게 만들어주는 기능을 하며, 그렇게 살아난 기억은 그때의 감정까지 다시 불러일으킬 수 있다. 즉, 사진을 찍어두고 다시 본다는 것은 과거 사건에 대한 단순한 추억의 행위가 아니라, 그 당시에 느꼈던 소중한 감정을 현재에 다시 불러일으키는 숭고한 행위이다."

나아가서, 그렇다면 사진 작가란 어떤 사람인가. 결국 감정을 표현하기 위한 매체로 사진을 쓰는 사람 아닐까. 모든 예술가가 감정을 표현하기 위해 소리, 그림, 글 등 나름의 방법을 사용하듯. 일반인들이 감정을 먼저 느끼고 사진을 찍어둔다면, 사진작가는 특정 감정을 표현하고 전달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사람이 아닐까. 보는 사람이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못한다면, 그 사진은 찍은 사람만의 기록용 사진일 뿐, 그 이상의 가치는 없음. 의도와 다른 감정을 불러일으킨다면, 마찬가지로 작가의 의도는 실패. 표현하고자 했던 작가의 "감정"을 보는 사람이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구도나 노출, 초점의 문제를 떠나서 그 사진은 잘 찍은 사진일 것이다.

나아가, 품평회에서 오고가야 할 문답들은 어떠해야 할까. 구도나 노출, 초점, 진블랙, 피사체 등 이런 기술적인 문제보다 어쩌면 가장 먼저 논의되어야 할 내용은 이런 것이 아닐까. "어떤 감정을 표현하고 싶었나요", "사진을 찍을 때 어떤 감정을 느꼈나요", "그 감정이 사진에 잘 담겼다고 생각하나요", "그런 감정이 느껴지네요", "저는 그런 감정을 전혀 느끼지 못했거든요", 뭐 이런 질문들. "그냥 찍었어요" 또는 "찍고보니 동기들이 좋다고 해서..." 이따위 대답이 나오면 전시회에 낼 자격이 아예 없는거다. 물론 나도 반성하고.

(2014. 2. 27. 남미 배낭여행 중 칠레 산티아고에서 작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