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6/03

영화 《Man from Earth》

오랜만에 영화 Man from Earth를 다시 봤다. 만 사천 년을 살아온 주인공 John은 자신이 늙지 않는다는 점을 주변 사람들이 알아챌 때쯤 떠나곤 했다. 보통은 이런저런 핑계를 대지만, 이번엔 동료들이 집요하게 물어보는 바람에 자신의 이야기를 풀어놓는다.
대화 중 자선단체 사람들이 가구를 가지러 온다. John이 모두 다 가져가라고 하자, 동료들은 놀란다. 한 동료가 전부 다 기부하냐고 묻자 John은 “또 생길 텐데요.” 하며 대수롭지 않게 넘긴다.
예전의 삶을 떠올릴 만한 유물이나 기념품은 없냐는 친구의 말에 John은 이렇게 답한다. “벼룩시장에 있잖아요. 정말로요. 수백, 수천 년을 사는데 볼펜 같은 걸 갖고 다닐까요? 무엇 때문에? 태초(beginning)를 기념하려고? 그런 개념조차 없었는데. 어차피 다 없어지고 사라질 거예요. 유물 따윈 없어요. 그것도 가지세요.”
영화를 다 보고 생각에 잠겼다. John에게 삶은 어떤 의미일까. 사랑했던 모든 사람이 자신보다 먼저 늙어 죽는다. 한때 소유했던 모든 물건은 낡고 쓸모없어져 사라진다. John에게 소중한 가치는 무엇일까. 과연 John에게 소중한 ‘물건’도 있을까?
픽업트럭 한 대에 실리는 적은 이삿짐에서 그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책과 학위 증명서는 지식 추구를 상징하고, 친구였던 반 고흐가 선물한 그림은 우정을 상징한다. 사냥용 활은 만 사천 년짜리 취미를 상징한다. 그 외의 상자에는 생필품이 들어 있을 것이다. 그 외엔 없다. 이사 다니기 쉽게 항상 최소한의 짐만 챙긴다.
우린 어떻게 사는가. 악착같이 돈 모으고 빚까지 내서 집을 산다. 비싼 가구로 집안을 가득 채운다. 꼭 필요한 물건으론 모자라서 남에게 보여주고 자랑하기 위한 가구, 남들 집에 다 있으니 우리 집에도 있어야 하는 가전제품, 광고가 세뇌당해 충동적으로 사는 물건… 그리곤 집이 작다고 불평한다.
죽은 물건과 함께 산다. 입지 않는 옷, 쓰지 않는 가구, 먹지 않은 음식, 신지 않는 신발, 보지 않는 사진, 읽지 않는 책. 모두 제 기능을 하지 못한 채 죽은 상태로 그저 자리만 차지하고 있다. 그렇게 죽은 물건과 같은 공간에서 지낸다. 의식하지 못한 채.
우리도 John처럼 살 수는 없을까. John은 오래 살며 많이 깨달아 물건에 대한 집착이 없다. 그에 비해 우리 인생은 짧고 어리석어 물건에 집착한다. 자신에게 가치 있는 일을 찾아 그것에만 집중하며 살아도 짧은 인생이다. 남의 가치관 따라 살다가, 언젠가 ‘내가 내 인생을 살지 않았구나’ 하며 깨달았을 때는 이미 늙고 병들었을지 모른다.
항상 고민해야 한다. 내게 가장 중요한 가치는 무엇인가. 그다음은? 또 그다음은? 그렇게 생긴 우선순위대로 시간을 할당하고, 행동해야 한다. 나머지 중요하지 않은 일은 과감히 제거해야 한다. 물건도 마찬가지.
앞으로 만 사천 년을 더 살 수 있고, 당장 내일 떠나야만 한다면, 당신은 무엇을 챙기겠는가?
(영화는 유튜브에서 '맨프롬어스'로 검색하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