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02/21

필름 사진을 떠나며

2002년, 장롱에서 아버지의 필름 카메라를 발견하면서 필름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대학교에선 '흑백사진 예술연구회(COMA)'라는 동아리에서 활동했고, 작년까지도 필름 사진을 찍었다. 남아메리카와 태국, 라오스 여행도 함께 했다. 하지만 이제 필름 사진을 떠나려 한다.
필름 사진은 분명히 매력이 있다. 필름을 주문해서 카메라에 넣고, 신중하게 셔터를 누르고, 두세 롤을 모아 현상소로 보내고, 돌아온 필름을 스캔해서 파일로 만들고, 편집해서 블로그에 올리는 모든 과정은 시간과 정성이 필요하지만, 그 자체로 즐겁다. 필름 사진만이 지니는 독특한 분위기도 필름 사진을 찍는 이유이다.
단지 내가 미니멀리스트가 되어서, 카메라를 버리기 위해 필름 사진을 그만두는 것은 아니다. 만약 필름 사진이 내게 가치 있고, 삶을 풍요롭게 한다면 계속 찍겠다. 하지만 내게는 필름 사진보다 시간이 더 소중하다.
시간은 다시 돌아오지 않는 가장 소중한 가치이다. 필름 사진은 복잡한 절차 때문에 이미지를 얻기까지 들이는 시간과 에너지가 과도하다. 아이폰 카메라와 디지털카메라만으로도 얼마든지 내가 원하는 사진을 찍을 수 있다. 이미지와 의도가 중요하다. 필름인지 디지털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필름은 모두 스캔하여 구글 포토에 올려놨으니 버릴 예정이고, 마지막 필름 카메라도 중고로 내놨다. 필름 스캐너도 곧 팔아버릴 예정이다. 이제 '필름 사진을 찍어야 한다'는 강박(?)에서 해방된다. 여행 갈 때마다 어떤 카메라를 가져갈지 고민하지 않아도 되고, 사진 그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다.
후련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