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12. 22.

교수 연구실에 짐이 쌓이는 이유

가끔 교수 연구실에 일을 도와드리러 간다. 내가 본 대부분의 교수 연구실은 짐이 가득하다. 수십 년째 보지도 않는 원서부터 제자들 논문, 학회지, 정체 모를 서류들, 선물로 들어온 화분, 각종 명패와 기념품까지 편히 눈 둘 곳이 없다. 그래서 조금만 머물러도 숨이 막히고 답답하다. 원래 좁은 연구실인데 짐이 많아 여유 공간은 전혀 없고, 짐 사이로 한 사람 겨우 지나다닐 좁은 통로가 생긴다. 짐이 모든 공간을 잡아먹고, 정작 사용자는 좁은 통로를 지나 책상 위 모니터 앞 작은 공간만 겨우 활용한다.
교수 연구실에 짐이 많고 정리를 안 하는 이유를 생각해봤다.

일단 배정받으면 퇴직할 때까지 쓴다

학교를 옮기거나 학과가 다른 건물로 이사하는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곤, 일단 배정받은 연구실은 퇴직할 때까지 계속 쓴다. 만약 정기적으로 연구실을 옮겨야 한다면 어떨까? 다음 이사 때 힘들게 짐을 옮기지 않으려면, 짐이 너무 많아지지 않도록 조절할 테다. 하지만 실제로 그럴 일은 없다. 일단 배정받으면 퇴직할 때까지 쓰는 공간이기 때문에, 이삿짐 걱정 없이 마음껏 짐을 들인다. 처음엔 연구실이 깔끔하지만, 근무 연수가 쌓이면서 짐도 비례하여 쌓인다.

짐 많다고 잔소리 듣지 않는다

교수 본인 연구실이라서, 다른 그 누구도 연구실 사용에 간섭하지 않고, 감히 간섭할 수도 없다. 학생이나 동료 교수가 '짐 좀 치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도, 감히 입 밖으로 말을 꺼내지 못한다. 그 누구도 짐이 많다고 잔소리하지 않는다. 스스로 깨닫지 않는 이상, 많은 짐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공짜다

비싼 돈을 내고 쓰는 공간이라면, 쾌적하고 효율적으로 활용하기 위해 노력할 텐데, 공짜로 쓰는 공간이라 그럴 이유가 없다. 5평짜리 연구실을 월세 50만 원에 쓴다면, 4평을 짐으로 가득 채워둘까? 짐 쌓아두는데 월 40만 원을 기꺼이 내면서?

교수라는 직업의 특성?

연구자는 자료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논문을 쓰거나 프로젝트를 수행할 때 자료는 많을수록 좋으므로, 쓸만한 자료는 일단 모아두고 본다. 석사, 박사과정을 거쳐 교수가 되면서, 나중을 생각해 버리지 못하고 뭐든지 일단 모아두는 습관이 형성될 것이다. 그래서 각종 책과 학술지, 학회지, 논문, article, 보고서 등이 연구실에 차곡차곡 쌓인다. 퇴직할 때 집에 다 가져가는 교수님은 한 분도 못 봤다. 겨우 한 두 박스만 챙겨가고, 나머지는 다 버려두고 간다. 어짜피 쓰레기장으로 향할 짐인데, '혹시 나중에 볼 지 몰라.'라는 생각에 수십 년간 공간을 차지한다. 항상 그렇지만, '혹시 나중에'라는 시간은 존재하지 않는 미래다.
30여 분 연구실에 머물면서 정말 답답했다. 그렇다고 교수님께 '짐 좀 정리하세요. 안 쓰는 건 좀 버리시고요.'라고 말할 수도 없었다. 그저 빨리 일을 끝내고 내 사무실로 돌아가고픈 마음뿐이었다. 그리고 내 자리를 언제나 깔끔하게 유지하겠다고 한 번 더 다짐했다.